'데스티니2: 최후의 형체' 리뷰
#FPS #MMORPG #LooterShooter
루터슈터 장르의 유일한 선택지, 데스티니2 10년 서사의 완벽한 마침표.
루터 슈터 장르를 채택한 MMORPG.
이 장르엔 선택지가 단 하나만 존재한다.
데스티니2.
국내에선 데스티니 가디언즈라는 이름으로 먼저 알려졌던 게임이다.
단 하나의 패키지를 내고 DLC 몇 개에 사후지원을 해주는 정도가 아닌, 1년 주기로 AAA급 볼륨의 확장팩을 지난 10년에 걸쳐 꼬박꼬박 내준 유일한 게임이다.
물론 확장팩 자체 금액을 풀 프라이즈 가격으로 받으면서 시즌패스까지 한번 더 결제하게 만드는 데다 인게임에서는 유료 재화로만 구매할 수 있는 치장 아이템 등을 또 팔고 있다.
이 게임에 빨린 돈을 생각하면 부아가 치밀기도 하지만, 이번 최후의 형체에선 좀 다르다.
붉은 전쟁, 포세이큰은 블리자드의 배틀넷을 통해 PC방에서 했기에 논외로 친다면, 이번 최후의 형체는 지난 마녀여왕 이후로 돈이 아깝지 않은 두 번째 확장팩이라 할만하다.
데스티니1에서부터 쌓아왔던 10년간의 그 많은 사건들과 인물들의 서사를 무사히, 기대 이상으로 끝마친 점 하나만으로도 칭찬할만하다.
이 게임은 라이브 서비스 되고 있는 MMORPG다.
장르 특성상 게임의 근간이 일정 규모의 활성화된 유저 수가 유지 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의 사례를 찾아볼 필요도 없이 국내 게임들 중에 10년이 넘어서도 유의미하게 서비스되는 게임은 한 손에 꼽고도 손가락이 몇 개 남을 정도다.
국내의 MMORPG들의 경우 흔히 '교복 셋'을 맞추는 데에 200만 원이니 600만 원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숫자가 요구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데스티니2의 경우엔 비싸다곤 하지만 확장팩 가격에 시즌패스 가격까지 11만 원 정도를 지불하고 나면, 욕심을 부리지 않는 이상 돈을 더 쓰지 않아도 괜찮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Pay to Win으로 일컬어지는, 현금을 지불해 내 캐릭터의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시스템이 있느냐의 여부일 것이다.
보통 Pay to Win이 아닌 게임의 경우 유저들의 컨텐츠 소모 속도를 늦추기 위해 파밍에 걸리는 시간을 길게 하는 등의 수작을 부리기 마련인데, 데스티니2는 그래도 납득할 만한 수준이다.
최후의 형체는 주인공인 수호자가 여행자의 심장에 진입하면서 시작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여행자의 내부로 들어온다거나, 여행자의 내부가 하나의 세계로 실체화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전 확장팩인 빛의 추락에서 목격자가 해왕성에서 베일을 찾아내 여행자의 내부로 이어지는 통로를 만들며, 알고 있던 세계가 한층 넓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좋았다.
더불어서 기억이 실체가 되는 여행자 내부의 특성 때문에 목격자의 약점이 드러난다는 개연성도 납득할만했다.
여행자 내부의 풍경은 지난 확장팩에서 거쳐왔던 곳들의 모습이 섞인 듯한데, 아마 개발진들도 이런 식으로 리소스를 재활용할 수 있어서 좋았을 것이다.
케이드-6의 재등장은 예견된 것이었다.
대단원의 막에서 그를 빼고 진행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포세이큰 확장팩에서 그렇게 떠나보내기엔 그와 쌓아온 좋았던 추억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선봉대 화력팀, 주인공과의 이야기, 그리고 전 울드렌 소프였던 까마귀와의 매듭이 남아있었다.
그의 고스트인 선댄스와 그의 총 스페이드 에이스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갑작스레 살해당한 케이드-6 그 자신이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했다.
이건 그를 사랑했던 모든 플레이어들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서사를 이끌고 가는 중요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의 이해를 돕는 안내자 역할이기도 하다.
목격자의 목적은 온 우주에서 가장 이상적인 순간을 추출해 박제시켜 변하지 않는 완전한 최후의 형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 후에는 모든 이들의 정신을 합쳐 단 하나의 존재를 탄생시키고자 하였다.
목격자의 정체부터가 이미 그들 종족의 정신을 강제적으로 합쳐 탄생한 존재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의, 그들의 눈에는 여행자가 우주를 떠돌며 생명을 퍼뜨리는 행위가 혼돈을 가져오는 우주적 파멸 행위로 보였을 것이다.
이토록 섬뜩한 신념을 가진 목격자는 여행자의 심장 한가운데서 여행자를 오염시키고 최후의 형체를 이루려 한다.
언뜻 들으면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겪어왔던 사건들이 목격자의 행위에 대해 핍진성을 만들어 낸다.
어느 정도는 공감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실패도 있고 시련도 있는 게 사람 사는 맛이라고 한다지만, 그걸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과연 어떻게 될까?
그렇다.
바로 지나쳐온 오래전 그 시절의 감상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고 상상하게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목격자의 이런 특성들은 보편적인 감정인만큼, 등장인물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까마귀는 각성자 대공 울드렌 소프 시절의 죄가 너무나도 크고, 자발라는 자신의 나약함으로 인해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 지금까지 후회하는 모습이 몇 번이고 나왔다.
케이드-6는 자신이 죽은 뒤, 남겨두고 온 것들에 대한 마음의 짐이 너무 무거워 악몽과도 같은 상상에 사로잡혔다.
급기야 자발라는 자신이 믿고 의지하던 여행자를 완전히 의심하기에 이른다.
좋았던 것은 등장인물 각각이 쌓아 올린 서사를 에누리 없이 깔끔하게 활용해 준다는 것이다.
떡밥 회수라고 해야 할까, 그들의 과거는 게임 스토리 상 커다란 위기를 몰고 온 원인이 되기도 했다.
목격자가 제시한 잣대와 여행자로 대변되는 생명 스스로의 잣대가 충돌하는 모습이다.
이건 데스티니라는 게임 속에 줄곧 담겨 왔던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목격자는 그들이 거의 다 넘어왔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가까워졌던 이 경험이 오히려 약점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한다.
바로 목격자에게 강제로 통합된, 최후의 형체 계획에 반대했던 목격자의 인격 일부가 자발라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들 반대자를 만나는 것이 목격자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이는 반대로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간다는 의미도 된다.
자발라는 독단적으로 그곳에 발을 디뎠고, 자신을 잃기 일보 직전에 그의 고스트인 타르지의 희생으로 구출된다.
수호자는 여행자의 힘을 고스트를 통해 받는다.
고스트가 죽지 않는 한 수호자는 몇 번을 죽던 소생이 가능하다.
수호자들의 사령관 자발라는 고스트를 잃고 나서 죽음에 온전히 노출된 이후에야 한발 더 나아갈 힘을 얻는다.
여행자의 가호를 받는 리더로서의 중압감, 항상 고결해야 한다는 강박 등에서 완전히 해방된 자발라는, 여행자의 빛에서 대척점에 있는 어둠의 힘, 시공까지 받아들이며 진정 헌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는다.
이 모든 시련과 타르지의 희생을 통해 분열되었던 선봉대 화력팀도 다시 한번 굳건해진다.
하지만 전지전능한 게 아닐까 싶은 목격자를 쓰러뜨리기엔 정보가 부족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멸할 수 있다.
목격자는 전지전능한 힘을 휘두를 뿐, 불사신이 아니었다.
자발라가 겪은 잠깐의 접촉으론 부족하다.
반대자를 한번 더, 더욱 가까이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결국 목격자와의 일전은 예정되어 있는 셈이었다.
목격자와의 한차례 싸움으로 그에게 상처를 낼 수 있는 방법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목격자를 이루고 있는 그들 종족의 수많은 정신들, 그들을 파괴해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내면 속 반대자의 목소리를 더욱 강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목격자를 없애기엔 역부족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반대자의 말.
본모습을 드러낸 목격자를 상태로 수호자들은 목숨만 겨우 건진 채 탈출한다.
이제는 병력을 모아야 할 시간이다.
태양계를 수호하는 모든 이들이 여행자의 심장부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격자와의 최후의 결전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함께 싸워왔던 동료들이 함께 목숨을 걸고 동맹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적이지만 같은 빛을 공유하는 자로서 공통된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온 마녀여왕 사바툰까지 전력을 다한다.
이 순간부터 강한 것은 위험 투성이인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한 자들이며, 가장 좋았던 순간에서의 영원을 선택한 목격자는 가련하고 연약한 존재가 된다.
자신이 1초 뒤에 죽을지, 10년 뒤에 죽을지 모르는 삶이기에 다음 한 발자국이 가치 있는 것임을 모르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모두가 한 마음으로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당도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상상도 못 한 모습으로 변한 목격자였다.
천수관음과도 같이 온 세상에 그 손을 뻗은 목격자는 그 힘의 걸맞은 방법으로 사방에서 수호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목격자의 병력들은 지난 10년간 봐왔던 그 어느 때보다 강해져 목격자의 힘을 실행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수호자들은 그의 어둠을 당당히 맞이하여 내면의 인격들을 하나씩 해방하기 시작한다.
스러져가는 반대자들이 외치는 절규가 소름이 돋을 정도다.
끝내 목격자를 궁지에 몰아넣은 수호자들은 여행자의 빛을 고스트를 통해 발사해 그를 완전히 무너뜨린다.
한계에 다다른 고스트는 죽어버리고 플레이어의 몸에서 빛이 떠나가 버리지만, 케이드-6의 희생으로 플레이어는 다시 빛을 되찾는다.
거대한 적,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사라졌다.
하지만 목격자에 의해 속박되어 있던 여행자의 힘이 풀려나며 거대한 빛의 메아리를 태양계 너머까지 흩뿌렸다.
대단원의 막이 내렸고 또 다른 위협이 찾아오려 함을 암시하며 데스티니2: 최후의 형체의 본편 스토리는 막을 내린다.
처음 목격자가 여행자를 쫓아 온 경위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여행자에게 우리가 모르는 어떤 문제가 있나 싶었다.
목격자의 세계는 여행자가 태양계에 오기 한참 전에 여행자의 축복을 받던 세계였다.
그들의 발전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자, 베일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 베일을 통해 본 미래는 여행자의 축복으로 인한 우주의 파멸이었다.
그들은 모든 정신을 합쳐 목격자를 만들어내고, 온 우주를 영원한 상태로 박제해버리려 했다.
하지만 최후의 형체가 완성되기 전에 여행자가 도망친 것이다.
그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태양계에 다다라서야 끝을 맺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목격자가 지구와 여행자를 노리고 다가오고 있다는 게 구체화된 게 언제부터였을까.
데스티니2의 첫 메인 캠페인 스토리인 '붉은 전쟁'의 엔딩 부분에서 태양계를 향해 밀려드는 검은 함대의 위용을 기억한다.
처음엔 그저 다음 확장팩의 떡밥이겠거니, 언젠가 쓰러뜨리게끔 되어있는 상대에 불과하겠거니 하며 대단치 않게 생각했었다.
섀도우 킵과 빛의 저편 확장팩을 지나며 우리는 어둠의 존재에 대해 알고, 그 힘을 휘두르게 된다.
어둠은 처음엔 악으로 인식되었지만, 그것이 빛만큼이나 악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녀여왕 확장팩에서 사바툰의 왕좌세계를 이용한 사바툰의 여행자 강탈 계획을 저지하며, 여행자와 그의 빛이 어둠만큼이나 선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또한 깨닫는다.
정리하자면 그냥 각 확장팩에서 보스로 등장한 에라미스 켈이나 사바툰이 빛과 어둠을 악하게 사용했을 뿐인 것이다.
어둠은 옳지 않지만, 그렇다고 빛이 완전무결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어느 한쪽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앞서 말한 둘 외에도 여행자의 빛에 대한 믿음이 지나쳤던 선봉대 대장 자발라는 여행자에 대해 의구심이 생긴 순간 그 누구보다도 크게 무너졌다.
붉은 전쟁의 도미누스 가울은 빛의 축복에 미쳐 불에 달려드는 나방처럼 활활 타오르다 죽어버렸다.
그리고 목격자도 마찬가지다.
어둠을 휘두르는 목격자가 빛과 어둠의 조화를 완벽하게 다루게 된 수호자에게 패배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목격자는 여행자가 불러올 파멸을 막고자 최후의 형체를 이루려 했지만, 그것 또한 파멸의 한 가지 형태에 불과하다.
그는 빛의 축복이 파멸을 몰고 올 것이라 걱정했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멸할 수 있다는 단 한가지 진리조차 이해 못 한 멍청이에 불과했다.
한번 더 말하자면,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두려워해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지금을 살고 내일을 꿈꾸는 것이 생명을 가진 자의 올바른 도리이다.
데스티니2: 최후의 형체는 스토리에서의 떡밥 회수를 잘 해냈고, 등장인물들의 서사도 잘 끝맺었다. 퇴장할 사람들은 잘 퇴장했고 다음 스토리를 이어가기 위한 포석도 꽤 잘 깔았다고 생각한다.
그래픽은 10년 전 출시한 게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사실 게임 그래픽의 발전이 일정 수준을 넘어선 후로는 점점 더뎌지는 게 사실이지만, 요즘은 최적화 하나 못하는 함량 미달의 신작 게임이 우후죽순인걸 감안하면 동일 선상에 놓고 평가해도 좋을 정도다.
적들의 디자인은 그 어느 때보다 훌륭했다.
목격자가 직접 창조하거나 기존의 종족 일부를 재구성했다는 배경에 걸맞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운드는 그야말로 완벽하다.
지난 10년 확장팩 OST들의 정수를 뽑아 하나의 곡으로 어우러 낸 최종장의 그 음악이나, 캠페인 전반적으로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잘 느껴진다.
수호자의 스킬 디자인도 좋았다.
온갖 효과들이 난무하는 전투 중임에도 시인성이 좋았고, 직관성이 좋았다.
빛과 어둠의 균형을 찾은 것을 나타내는 강렬한 분홍(무지개?) 컬러가 맘에 들었다.
연출은 어떤 게임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지난 빛의 추락 확장팩의 평이 너무 안 좋았던 탓인지, 이번엔 칼을 갈고 나왔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목격자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연출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 부분이 저릿할 정도로 뽕이 차올랐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 게임에 대한 내 평가는 9/10 점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데스티니 프랜차이즈의 지난 10년을 완벽하게 정리해서 끝맺은 좋은 작품이다.
지난 시간을 전부 보상받은 느낌이다.
마치 친구가 내 휴대폰을 마구 때려서 부수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 내 앞에 최신폰을 들이민듯한, 그런 감동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