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 #생존 #RPG
외로이 미지의 심해 속을 헤매는 공포를 잘 표현해 낸 작품
게임에서 다루는 소재는 유저로 하여금 현실에선 가질 수 없는 능력을 쓸 수 있게 한다던가 특정 시대에 살아볼 수 있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함에 기인한다.
온갖 무기를 능숙하게 사용하여 범죄 조직을 물리치고 전설 속 일본의 여왕 '히미코'의 비밀을 풀기 위해 고대 도시를 누비는 '툼 레이더' 라거나 우주로 진출한 인류 중 하나가 되어 행성들을 탐험하고 온갖 식생들 속에서 살아남아 외계 문명의 실마리를 쫒는 '노 맨즈 스카이' 같은 것들이 그 예이다.
이런 게 너무 거창하게 느껴진다면, 조직에게 배신당한 야쿠자가 되어 의와 협을 관철하는 '용과 같이'나 아니면 그냥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시골 땅을 물려받은 손자가 되어 귀농하는 이야기인 '스타듀 밸리' 같은 것들도 있다.
이렇듯 일반적인 삶을 사는 우리로선 평생 경험해 볼 일 없이 상상만 하던 것들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게임의 매력인 것이다.
그렇기에 게임에서 가장 많이 활용된 소재가 '우주'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인류는 원시시대 부터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아왔다.
해가 지면 하늘을 수놓는 압도적인 광경, 하지만 닿을 수는 없는 우주에 매료되는 것은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심해는 어떨까.
달에 인간이 발을 딛고 55년이 다 되어가며 이제는 화성 식민지를 계획하고 있음에도 심해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우주는 거의 모든 부분이 텅 빈 진공상태지만, 심해는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깊숙이 내려갈수록 엄청난 수압과 추위, 그리고 어둠이 찾아온다.
그리고 본적 없던 심해의 생물들 까지.
이 모든것과 마주할 준비가 되었을 때, 서브노티카는 시작된다.
게임의 배경은 서기 27세기다.
인류는 이미 우주로 진출하였고, 알테라 주식회사는 3년 기한으로 아리아드네 암 성역에 위상 관문 설치 계획을 위해 승무원, 탑승객 총 157명을 실은 우주선 '오로라 호'를 출항시킨다.
그런데 행성 4546B 궤도에서 스윙바이를 하던 중, 원인불명의 선체 파손으로 행성에 추락한다.
추락 전 주인공을 포함한 여러 명이 가까스로 구명 포드로 탈출하지만, 주인공은 오로라 호 유폭과 대기권 진입에 의한 충격으로 떨어진 포드 파편에 머리를 맞아 기절한다.
눈을 뜨고 구명 포드 바깥으로 나온 주인공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추락한 오로라 호는 곧 폭발해서 방사능을 흩뿌리고, 구조 요청을 받고 온 우주선도 알 수 없는 외계 건물에 의해 격추당해 버린다.
이쯤 되면 외부의 조력을 기대하는 건 부질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당장 바닷속에서 식량을 얻고, 우호적이지 않은 생태계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오로라 호에서 탈출한 다른 구명 포드의 신호를 쫓아 생존자를 찾고 주변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외계 건축물의 비밀을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행성에서 탈출해야 할 것이다.
서브노티카의 세계는 기초적인 이동수단으로는 도저히 다 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하다.
이 모든 것이 해저 세계이며, 육지는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X축으로만 펼쳐진 세계가 아니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이 세계엔 심해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지역별로 다양한 식생이 분포되어 있고 당연히 얻을 수 있는 자원도 다르다.
얕은 곳은 비교적 온순한 생물이 살고 있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공격적인 생물을 만나게 된다.
당연하지만 생존에 필수적인 아이템을 제작하기 위해선 다양한 재료가 필요하고 어느 순간부턴 위험한 탐험을 강요받게 된다.
제작해야 할 아이템에 우선순위를 둬 탐험을 최대한 계획적으로 하고 중간중간에 거점을 건설해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플레이해야 할 것이다.
다행인 점은 아이템의 제작 난이도가 높아지는 과정이 탐험의 난이도 상승과 적절히 잘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어떤 아이템을 만들었다면, 지금 있는 지역보다 한 단계 높은 위험의 지역에서 충분히 생존할 수 있게끔 되어있다.
이 과정의 스무스함은 의식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자연스러운데, 이는 게임의 레벨 디자인이 잘 설계되었음을 의미한다.
심해를 탐험하는데 탈것은 필수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것이 첫 번째고 두 번째가 바로 수압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쉽게 제작할 수 있는 '시모스(Seamoth)'는 반쪽짜리 탈것이다.
빠르고 유연한 운항이 가능하단 장점이 있지만 잠수 모듈을 추가하더라도 최대 900m 까지가 한계 수심이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 모듈이나 저장고 모듈과 같이 포기하기 어려운 모듈을 탑재해야만 하는 것을 고려하면, 기껏해야 500m나 300m 잠항능력으로 만족해야 한다.
서브노티카의 최대 수심이 1700m 가까이 되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정말 수박 겉핥기 수준이다.
그래서 시모스 다음으로 목표가 되는 것이 바로 '사이클롭스(Cyclops)'다.
거대한 크기의 잠수함이며, 온갖 기능을 갖춘 이동식 해저 기지라고도 할 수 있다.
아무리 깊고 어두운 심해라도 사이클롭스의 안에 있으면 두려울 게 없다.
작은 보관 공간 때문에 허덕이던 것도 단번에 해소가 가능하며, 내부에 시모스나 후술 할 프론 슈트를 도킹할 수 있다.
외부 카메라를 제공하고 충돌 경고나 레이더, 무소음 항해 기능까지 있다.
사이클롭스를 장만했다면, 심해 탐험의 시작이다.
하지만 사이클롭스는 덩치가 너무 크다.
높은 수압에 견디면서 좁은 공간에 파고들 수 있는 '프론 슈트(PRAWN Suit MK.3)'가 필요해지는 순간이다.
프론 슈트는 '압력 반응성 방수 나노슈트'의 줄임말로 해저를 걸어 다니는 이른바 강화외골격이다.
왼팔, 오른팔에 각각 다른 파츠를 달 수 있고 긴 유지시간과 다양한 모듈을 장착할 수 있다.
사이클롭스보다도 튼튼해서 자체 공격수단을 장착한다면 어떤 심해 생물도 무섭지 않다.
심해는 입구부터 굉장히 어둡다.
사이클롭스의 전조등 빛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온갖 지형지물과 깊게 깔린 그림자, 복잡한 구조 때문에 몇 번이나 다녔는데도 길을 잃을 때가 많다.
심해의 끝까지 가는 경로 곳곳에 거점을 설치하거나 멀리서도 알 수 있을만한 오브젝트들을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디자인은 어느 곳 하나 빠짐없이 아름다운데 처음엔 해양 동, 식물들의 향연이라면 중간 부분엔 이 바다의 과거를 상상해 봄직한 거대한 뼈무덤,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 다다를수록 뿜어져 나오는 용암과 열수분출공의 지옥 등을 경험할 수 있다.
극한으로 치닫는 환경만큼 등장하는 해양생물도 갈수록 위협적인데, 처음엔 사이클롭스의 충각 만으로 해치울 수 있는 수준이지만 깊은 곳에 선 오로지 도망만을 생각해야 하는 생물들이 즐비하다.
두 마리 이상이 모이면 사이클롭스조차 터뜨려버리는 '유령 레비아탄'이나 탈것, 전자장비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EMP 공격을 하는 '게오징어', 그리고 가장 깊은 심해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해룡 레비아탄'까지 심해는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괴물들로 가득 차 있다.
때문에 심해 지역에서는 탈것에 타지 않은 채 맨몸으로 바깥에 나가는 것을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
사이클롭스의 수리나 자원 채집 등의 이유로 '잠깐이니까 별일 없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목숨을 잃게 만든다.
레비아탄 급은 탈출의 여지를 주지 않고 즉사시키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목숨을 잃게 만드는 거대 생물이 꼭 심해에만 있는 것은 아닌데, 얕은 수심 지역의 특정 지역엔 '사신 레비아탄'이 출몰하기도 한다.
다행히 사신 레비아탄은 가까이 가지만 않으면 공격받을 일은 없기 때문에 출현 지역을 잘 파악해 두는 것이 좋다.
심해로 빠져들수록 외계인들의 건축물이 더욱 빈번하게 출현한다.
그 속을 탐험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는데, 외계인들이 이 행성에서 '카라'라고 이름 붙인 미지의 전염병을 연구했다는 사실이다.
이 전염병은 일반 해양 생물들 뿐 아니라 레비아탄들, 심지어는 외계인까지 감염시켰던 걸로 보인다.
그 전파 속도에 외계인들은 이 행성을 포기한 채 황급히 떠나버렸고, 이후에 주인공이 온 것이다.
이러한 비밀을 파헤친 순간에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데, 바로 심해 가장 깊은 곳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바다 황제 레비아탄'이었다.
바다 황제 레비아탄이 텔레파시로 주인공을 부른 이유는 자신의 새끼들이 무사히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효소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입에서 액체 덩어리를 끊임없이 뱉어내고 있었는데, 미약하나마 '카라'의 항체 역할을 할 수 있는 바다 황제 종족 특유의 효소였다.
죽어가는 그가 만들어내는 항체 덕분에 이 행성의 생태계가 절멸하지 않고 그나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주인공을 통해 새끼들을 부화시켜 바다 곳곳으로 보냄으로써 카라를 완전히 종식시키고자 하고 있었다.
이를 돕지 않을 이유는 없다.
주인공이 재료들을 모아 부화 효소를 만들어 부화기에 넣자 바다 황제의 알들이 부화한다.
바다 황제 레비아탄은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둔 듯 쇠약해지고, 새끼들은 외계인의 게이트 너머로 사라진다.
이제 주인공이 이 바다에서 할 일은 끝났다.
남은 것은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 탈출할 우주선을 제작하는 일뿐이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사이클롭스 정도 되는 거대 잠수함을 건조한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이런 우주선이라니.
행성을 탈출할만한 연료는 어디에서 구한 걸까 싶지만, 이런 부분을 일일이 신경 쓰면 지는 거다.
주인공은 바다 황제 레비아탄의 마지막 인사를 들으며 떠난다.
서브노티카의 강점은 바다와 해저와 심해의 생태계를 마치 살아있는 듯 잘 표현했다는 것에 있다.
심해의 공포도 물론 있지만,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아름다움 또한 공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이런 생존 장르에선 좋은 음악보다도 중요한 게 바로 좋은 환경음이다.
물이라는 매질을 통해서 전해지는 어둠 속 미지의 울음소리 나 심해 밑바닥의 용암이 끓으며 뿜어내는 기포의 소리가 자아내는 느낌은 독보적인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우주에 관한 탐사나 연구는 이미 많이 진행되었기에 여러 매체를 통해 보고 들은 것이 있지만, 심해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기에 적당한 설득력만 있다면 그 어떤 장르보다도 깊게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심리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위로 향하는 것이 곧 성장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정설임에도 불구하고 서브노티카는 끝없이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소재를 선택했다는 것에 큰 재미를 느꼈다.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지만 서브노티카를 한 이후엔 이 재미있는 소재를 왜 여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 게임의 개발사인 '언노운 월즈 엔터테인먼트'가 그리 큰 규모가 아닌 중소기업이어서 더더욱 그렇다.
끊임없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이런 시도가 더욱 많아지길 기대한다.
서브노티카에 대한 내 평점은 7/10점이다.
심해라는 소재에 대해 독보적인 완성도와 함께 가슴 두근거리는 생존 모험을 원한다면 이 게임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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